진도전통한옥펜션 주변관광지 TOUR GUIDE

금갑해수욕장

규모가 그리 크지않고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청정해역으로 어족지원이 풍부하여 주변 어느 곳 에서나 바다 낚시가 가능하며, 경사가 원만한데다 모래가 고우며 피서객이 붐비지 않으므로 가족단위 피서객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또한 인근 해역에서는 바다낚시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신비의 바닷길

해마다 음력 2월 그믐경의 영등사리와 6월 중순경에 진도군 고군면 회동마을과 그 앞바다의 의신면 모도 사이에 바다가 갈라지는 일명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 물이 빠지면 폭 30~40m, 길이 2.8km 가량 되는 바닷길이 열리는 것이다. 이 기간내 회동리 일대에서는 신비의 바닷길축제가 열린다. 바닷길은 약 1시간 동안 완전히 드러난 후 도로 닫혀 버린다.

진도 운림산방

운림산방 1 은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64번지에 위치하며, 철종 8년1857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 2 小癡 許鍊, 1808~1894 이 조성해 말년에 거처하면서 작화와 저술 활동을 하던 별서이다. 1911년 허형이 운림산방을 떠나면서 매각되어 예전의 모습을 잃어버렸다가, 1982년 허련의 손자 허건이 운림산방을 다시 사들여 옛 모습 3 으로 복원한 후 진도군에 기증되어 관리되고 있다. 현재 1,367,620㎡ 일원의 운림산방, 운림사, 사천사, 운림지 등에서 자연과 인공이 화합하는 순응의 미학을 공간적, 지형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1981년 10월 20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51호 로 지정되었으며, 2011년 8월 8일 명승 제80호로 승격되었다.

진도해양생태관

사업비 48억 원을 투여하여 건립한 전시관으로, 2004년 4월 28일 개관하였다. 건축총면적 2,098㎡의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로, 조가비전시관과 생태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 조가비전시관에는 진도 출신의 허병운 씨가 20여 년 동안 외항선 선장으로 일하면서 수집하여 기증한 830종, 1만 2,000여 점의 조가비 중 2,800여 점의 조가비와 38점의 화석이 전시되어 있다. 2층 생태관에는 국내외에 서식하는 어류의 표본이 전시되어 있으며, 로비에는 잿방어·참돔·농어 등 진도 근해에서 서식하는 어류를 관찰할 수 있는 대형 수족관이 있다.

장전미술관

연건평 1,097㎡, 총소장품 303점이다. 서예가 장전(長田) 하남호가 개인 재산을 들여 세운 미술관이다. 지상 3층 건물로 5개 전시관에 한국화·서양화·서예·조각 등 각 분야에 걸쳐 우리 나라 중견작가의 작품과 작고한 작가의 작품이 현대 원로작가, 조선시대 이후 작고한 원로작가, 원로작가의 대형작품, 사제간 전시실, 고려청자, 이조백자 등의 주제별로 나뉘어 전시되어 있다.남진(南辰)이라는 미술관 이름은 하남호의 가운데 글자인 남자와 부인의 이름 진자를 합하여 지은 것이라 한다. 미술관 옆 동산에 소나무 숲이 우거지고 주변 계곡의 맑은 물이 미술관과 조화를 이룬다.

진도쌍계사

쌍계사는 신라 문성왕 때 도선국사가 창건했으며 절 양쪽으로 계곡물이 흐른다고 하여 절 이름을 쌍계사라고 했다. 그후 조선 인조 26년(1648)에 의웅이 중건 하였다.쌍계사는 대웅전과 명부전 요사채 등으로 이루어진 아담한 구모의 절로 특별한 배치는 없고 아기자기한 절이라고 해야 어울린다.

세방낙조전망대

해안도로를 따라 중간쯤에 만들어진 세방낙조전망대로 해질 무렵이면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다도해의 푸른 바다가 순식간에 붉은색으로 물드는데 앞으로 띄엄띄엄 놓여 있는 장도, 양덕도, 주지도, 가사도 섬들 사이로 넘어가는 일몰이 장관이다. 섬이 많다 하여 이름 붙여진 다도해 섬 사이로 넘어가는 풍경은 너무나 서정적으로 서해안 최고의 낙조라는 명성이 괜히 붙여진 것은 아닌 듯 하다. 지산면 가치리에서 세방리로 이르는 오밀조밀 모여 있는 다도해의 풍경을 감상하기에 좋으며 진도 곳곳에 세방낙조전망대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어 찾아가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넘어가는 것은 금방이라 충분히 여유를 가지고 찾아 가도록 하자.

진도 첨찰산

첨찰산은 전라남도 진도군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가장 높다고 하지만 해발 486m로 등산하기에는 그리 어렵지 않다. 2시간가량 걸려 정상에 오르면 사방이 탁 트인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맑은 날엔 직선거리로 140km 떨어진 제주도까지 보인다. 첨찰산은 뾰족할 첨(尖)과 살필 찰(察)자를 쓴다. 뾰족한 정상에서 주변을 살핀다는 뜻이다. 이런 지형조건 때문에 백제시대엔 이곳에 산성을 쌓았고 조선시대엔 봉화를 피우는 봉수대가 자리했다.

관매도

전라남도 진도군의 조도면 남쪽 관매도리에 위치한 섬이다. 조도군도의 중심 섬인 하조도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근접한 섬으로 동쪽은 관매항도(觀梅項島) · 신의도(新衣島), 북동쪽은 청등도(靑藤島), 북쪽은 각흘도(角屹島)가 각각 위치해 있다. 대부분이 산지로 되어 있으나 북서쪽으로는 모래사장이 3㎞ 정도 펼쳐져 있고 모래사장 뒤로 작은 평야가 나타난다.『대동지지』(진도)에는 볼매도(乶梅島)로 기재되었다. 『호남지도』와 『지승』에는 볼매도(乶邁島)로 나온다. 『광여도』에는 한자 표기가 보만도(甫萬島)로 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와 『조선지형도』에는 관매도(觀梅島)로 개칭되어 있다. 볼매는 돈대산이 있어 주변을 살피는 산이 있다 하여 한글로 볼뫼>볼메>볼매로 변하면서 한자로 볼매(乶邁)라 하였다. 이후 볼은 '볼 관(觀)'자로 매는 '매화나무 매(梅)'로 고쳐지면서 오늘날의 관매도가 되었다. 관매도의 8경 중 하나가 방아섬(또는 남근바위)이다. 관매도 해안을 따라 높이 약 10m 이상 되는 방아(또는 남근) 모양의 바위가 우뚝 서 있다. 선녀가 방아를 찧던 곳이라는 전설이 있다.

진도호국유적

고려시대 고종 이후 시작한 왜구의 침범이 연해 지방을 노략질 함으로써 충정왕 2년(1350)에는 진도의 관부와 백성들은 내륙 영암지방으로 옮겨 조선시대 세종 19년(1437년)까지 피난생활을 하다 다시 귀향한 것이다. 이들 수군진들의 축성 연대는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가장 불리한 경상도 및 전라좌수영 관하의 수군진들이 1488년 (성종19년)에서 1490년(성종 21년)까지 3년간에 걸쳐 축성되고 전라우수영 관하의 수군진들이 연산군-중종 연간에 측성된 점으로 미루어 볼때 성종-연산군 연간에 이 섬이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